리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정진숙 2016. 4. 5. 12:00

정선(鄭歚 1676~ 1759)은 조선후기의 화가, 문신이다. 본관은 광주,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 겸초(兼艸), 난곡(蘭谷)이다. 20세에 김창집(金昌集)의 천거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어 관직에 나가 후에 현감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중국 남화에서 출발했으나 30세를 전후하여 한국 산수화의 독자적인 특징을 살린 산수사생(山水寫生)의 진경(眞景)으로 전환하여 동방 진경산수화의 종화가 되었다. 동 시대의 화가인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과 함께 조선 삼재(三齋)로 불리었다.

 

우리의 산천을 직접 다니며 우리 시각으로 그린 진경산수의 명작 여러 점 중 특히 72세에 완성한 '금강내산(金剛內山)'은 금강산 일 만 이 천봉의 암봉을 마치 한 떨기 흰 연꽃송이처럼 화폭에 담아내 진경산수의 결정체로 평가된다. 정선은 기이한 산천의 모습이나 안개 낀 풍경 등 머릿속으로만 상상한 경치를 그린 관념산수화에서 벗어나 우리 산천을 직접 보고 그린 진경(眞景)산수화를 완성했다.

정선에 와서야 우리 산수화가 개벽되었다는 같은 시대 화가 관아재 조영석의 표현처럼, 그는 조선 300년 산수화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낸 천재 화가다

 

겸재 정선은 영조 때의 사대부 화가로 2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세가 기울어 김창집의 천거로 도화서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겸재의 집안 가세가 한 때 상당히 기운 것은 사실이지만 신분상의 변화가 있을 만큼은 아니었기에 중인계급 이하가 나가는 도화서에 사대부계층인 그가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의리명분을 중시한 성리학자로서 당시 사회를 주도했던 서인 노론계의 장동 김씨의 후원으로 정치적, 문화적 핵심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념실현의 선구적 역할로서 진경산수를 완성했기에 그가 화원이 될 가능성은 없었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겸재의 <경교명승첩>은 남북한강의 합수머리 양수리에서 시작된다. 특히 독백탄이란 화제가 붙은 그림을 보면 지금의 조안면 능내리와 양수리 일대의 전경을 그대로 재현한 실사에 가까운 그림이다.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경교명승첩은 비단바탕에 수묵담채의 상, 하 두 권의 화첩이다. 상첩은 양천현령으로 재임하던 1740~1741년에 절친인 사천 이병연과 시와 그림을 서로 바꿔보자는 약속을 위해 그렸던 <양천팔경>을 비롯해 한강과 남한강변의 명승도들이 수록되어 있다. 하첩은 10여년 뒤에 그려진 그림들로 서울주변의 실경도들과 함께 이병연을 회상하며 양천에 있을 때 그로부터 받은 시찰을 화제로 한 그림들이 실려 있다.

, 하첩에 모두 33점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의 60대 후반에서 70대 중반의 독창적인 진경산수의 특색과 변모의 과정을 살펴보는 중요한 자료이다.

 

겸재의 화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산수화를 비롯해 인물화에 이르기까지 화제가 무궁무진하다. 특히나 72세에 금강산유람에서 많은 금강산도를 남겼는데 진경산수의 최고 작품들이 이 무렵에 완성되었다.

그는 이전에도 금화현감으로 있던 이병연의 초청으로 사천과 더불어 여러 번 금강산기행에 나섰다. 금강산 여행 중 받은 감동을 내외 금강산 진경 30폭에 담아 사천의 후의에 보답하기 위해 주는데, 이로 인해 겸재의 화명이 자자해져 당시 좌상으로 있던 김창집이 천거하고 보증을 서서 관직을 얻게 되니 이때 겸재의 나이가 40세를 전후한 때이다. 그 뒤 양천현령을 거쳐 종2품에 이르러 자칫 낙반(落班)될 위기를 모면하여 가문을 재건한다. 이와 같이 초년의 어려움을 자신의 능력으로 극복하고 만년에는 온갖 명예와 복록을 누리었던 겸재는 84세의 천수를 누리고 후대에 모범이 되는 걸작을 남기며 위대한 생애를 마친다.

 

인상파 화가인 모네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의 색채를 담기 위해 같은 장소에서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다른 색감의 성당을 그렸다면, 겸재는 그보다 앞서 금강산의 같은 장소의 실경을 여러 점의 작품으로 남겼다. 이번 공지를 계기로 그의 많은 작품을 대하다 보니 감히 닿을 수 없는 그의 예술혼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겸재가 있어 서울의 지워진 풍경을 기억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가. 혹시 그가 서울이 지금의 이런 모습으로 바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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