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역마살은 꽤나 오래된 지병이다.
초등학교를 다섯 번 전학한 이력이 어쩌면 한 몫 했을 지도 모르겠다.
일 년에 한 번씩 도시를 옮겨가며 초등학교 6년을 마쳤다.
아버지의 사업 소재지를 따라 대구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서울로.
마지막 종착지는 서울이 되었다.
서울에 정착한 이후로는 병 아닌 병이 생겼다.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에 대한 불안정감, 떠나지 못하는 붙박이의 갑갑증 같은 것이 생겨났다.
나름대로 내린 처방은 이웃동네 구경하기나 버스 타고 종점가기였다.
목적 없이 이리저리 기웃대며 떠남에 대한 갈증을 조금씩 풀었던 것 같다.
수학여행 이후 처음 간 여행은 직장야유회에서였다.
여행이라 말하기도 멋쩍은 여행이지만 어딘가로 멀리 가는 것에 무턱대고 좋아했다.
대관령 고개 넘어 외설악으로 가는 가을 야유회.
어린 시절 소풍가는 날의 기다림보다 더 설레는 맘으로 이 날이 오기를 손꼽았다.
10월 첫 주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새파란 가을하늘을 올려다보고 또 보고 창밖을 한없이 내다보았다.
문막을 지나 강원도 경계를 넘을 즈음엔 가슴이 벅찼다.
열아홉 살 사회초년생이던 그때, 처음 본 대관령휴게소가 잊혀 지지 않는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과 맑고 차가운 가을바람
휴게소 광장으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위한 협주곡은 천상의 소리처럼 들렸다.
너무도 완벽한 가을날이었다.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진 넓은 초원은 보지 못한 알프스의 초원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이날의 기억은 설악산도 동해바다의 풍경도 아닌 대관령의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강릉으로 가는 새로운 도로가 생겨 이제 구 길은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길이 되었다.
굽이굽이 돌아 느리게 가는 길의 여유는 이 시대의 감성은 아닌가 보다.
구 길에서 새 길을 내려다보면 여러 가지 감회가 엇갈린다.
속도를 향한 목마름은 그칠 줄 모르고 사라지는 것의 아쉬움에는 모른 척해버린다.
뻥뻥 뚫린 길을 달리다 보면 나쁠 건 없지만 풍경을 보고 느끼는 여행의 낭만 또한 없다.
목적지까지의 짧아진 시간을 얻은 만큼 잃은 것 또한 있지 않을까.
오로지 빠른 것만이 최선일까 싶기도 하다.
대관령 옛길은 유서 깊은 고갯길이다.
율곡 이이가 한양으로 과거시험 보러 가는 길에 곶감 백 개를 들고 가며 굽이를 지날 때마다 한 개씩 먹었다고 한다.
대관령을 넘고 보니 아흔 아홉 개 중 한 개가 남았다 하여 ‘아흔 아홉 구비’라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지난 1월 제왕산을 넘어 솔향 가득한 대관령 옛길을 걸었다.
이 길을 걸었던 수많은 옛 사람들.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뭉클하던 생각이 난다.
대관령 길은 옛 사람을 만나러 가는 여행길이다.
고개 넘어 강릉에서 사임당도 만나고 율곡도 만나고 허난설헌도 만나는 길이다.
옛 유적지를 찾는 것은 옛사람과 공감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과거로의 여행으로 내면의 지평을 넓혀가는 일이다.
그 길을 가는 동안 나의 옛 추억도 만나게 된다.
대관령 길은 산도 만나고 바다도 만나는 설렘의 길이다.
고개 넘어 강릉에는 솔향 우거진 숲도 있고 동해 푸른 바다도 있다.
시원한 바닷길 7번국도가 꽉 막힌 가슴 속을 뻥 뚫어준다.
서울에서 3시간
서늘한 대관령 길을 넘으면 솔향 강릉 동해가 기다린다.
언제나 마음 먼저 달려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