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지 이십여 일만에 부산을 다시 찾은 건
순전히 이 카페 때문이다.
너무나 강렬했던 첫인상이 각인되듯 남은 공간.
지난 번 여행에서 우연히 알게 된 카페 브라운핸즈 백제는
이틀간의 일정을 더욱 알차게 만들어준 곳이다.
어떤 공간일까 궁금해 하는 문우들과 또 찾고야 말았다.
사람마다 그 나름의 사연이 있듯 사물에도 나름의 사연들이 있다.
백제병원은 브라운핸즈 백제의 첫 번째 이름이다.
이곳은 1922년 부산에서 개원한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 건물이었다.
1930년대 의료사고로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진 이후
백제병원의 용도는 파란만장하게 변해갔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봉래각이란 식당을 시작으로
2차 대전 당시 장교숙소로, 치안사무소로도 사용 되었다.
해방 후 한때는 중국 영사관으로 쓰인 적도 있었고
6,25 이후엔 예식장으로도, 무도장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1972년 불이 나며 5층은 소실되고
지금의 4층 건물이 근대건조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1층은 빈티지가구 브랜드 브라운핸즈의 쇼룸이자 디자인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2016년 3월 카페로 재탄생하기까지
이 건물은 롤러코스터처럼 급변하는 시간을 지나왔다.
묵직한 나무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다.
고재 벽돌의 거친 벽면이 그대로 드러난 입구
오랜 폐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걸 놀랍다고 표현해야 하나.
녹슨 철재 난간을 몇 칸 올라 카페 내부로 들어서면
기막힌 공간이 펼쳐진다.
마치 1920년대로 걸어 들어가는 것만 같다.
과거는 허물어지지 않고 그대로의 민낯으로 차곡차곡 쌓여있다.
검게 변한 목재 천정과 하얀 사기애자에 연결된 전깃줄
어두운 실내등과 흙이 후드득 떨어질 듯 허술한 벽.
그렇지만 모든 벽들은 백년을 버텨온 세월만큼 두툼하고 야무지다.
시간의 켜를 고스란히 간직한 브라운핸즈 백제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낮에 다녀온 이곳의 인상이 너무나 강렬해 같은 날 밤 다시 찾았다.
우연히 들어선 곳, 맘에 꼭 드는 아지트를 만난 듯 반가웠다.
차가운 병원용 트레이에 올려 진 머그잔, 다크 리브레의 깊은 커피 향
입 안 가득히 번지던 블랙커피의 미감이 오래도록 잊혀 지지 않고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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