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에서 주전골로 오르는 길에 재미난 광경을 목격했다.
“내가 망경대 먼저 가자했잖아. 괜히 시간 놓치고 이게 뭐야.”
젊은 부부가 다투고 있었다. 십대 딸부터 네댓 살 된 아들까지 다섯 명의 아이들과 산행을 나선 부부였다. 절로 웃음 번지게 하는 그림이었다. 젊은 부부의 다투는 모습도 예쁘고 고만고만한 아이 다섯이 어울려 부모 주위에서 놀고 있는 것도 귀여웠다. 수세에 몰린 남편을 도운다시고 한 마디 거들었다.
“안 가시길 잘 한 거예요. 지금 보시는 주전골 풍경이 망경대보다 더 좋아요. 가봐야 사람도 많고 줄이 길어서 아이들이랑 고생만 돼요. 이 길로 먼저 오신 게 더 나았어요.”
아, 정말이에요 하며 부인의 얼굴이 조금 부드러워졌고 남편도 다행이다 싶은 표정을 짓는다.
한계령을 넘어서며 막히기 시작하는 도로. 예정된 코스를 진행하기엔 시간상 어려울 것 같았다. 다행히 인솔자의 기지로 중간기점 용소탐방센터에서 망경대로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다. 평일임에도 늘어선 줄이 장난 아니게 길다. 급하게 닦은 등산로는 여러 모로 허술해 보인다. 등산객들의 발길에 여기저기 훼손된 곳도 눈에 띈다. 망경대 초입은 여느 산길과 별반 다름 없는 등산로였다. 그래도 이 길 위에 선 마음은 즐겁기 만했다.
올 가을 망경대 길은 참말로 대단했다. 시월 첫 날 개방과 더불어 전국의 산객들이 남설악에 다 모인 건 아닌가 할 만큼 연일 뉴스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누구는 실망스러웠다 말하고 좋았다고도 하고, 누구는 양양군의 사기니 뭐니 국립공단의 생각 짧은 행태이니 뭐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기사가 사이버뉴스 곳곳을 장식한다.
천태만상 세상이니 남들이 보는 시각이야 탓 할 건 없다. 각설하고 내가 본 망경대 길은 누가 뭐래도 좋았다는 것. 망경대에서 본 만물상의 조망은 최고라는 것. 주전골의 가을빛은 환상적이었다는 것.
46년 만에 개방한 망경대는 아이 다섯을 대동하고도 가고 싶은 길이고 궁금한 풍경이었다. 못 가본 곳이기에 누구라도 가고 싶은 길일 수 있다. 그 길을 나선 이들을 뭐라 말할 자격은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길이 막힐 줄 알면서도 고생인 줄 알면서도 밤잠 설치며 이 길로 달려온 이들이다. 이 가을 최고의 절경을 만나고파 예까지 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설악의 단풍처럼 아름다운 마음의 사람들일 것이다.
지리산 피아골 삼홍소의 삼홍 중에도 인홍이 있다. 산의 단풍 산홍, 물에 비친 단풍 수홍, 사람 단풍 인홍, 가을 풍경 속에선 사람도 자연이 된다. 가을엔 사람도 단풍처럼 물이 든다.
반세기 만에 처음 길을 연 망경대가 앓는 지독한 몸살이 걱정스럽긴 해도 이 길을 걸었던 건 행운이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만물상의 위용은 웅장했고 주전골 단풍은 때마침 최고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망경대 가는 길의 번잡함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긴 줄에 선 순간도 즐거웠고 인파와의 부대낌도 견딜만했다. 좋은 맘으로 왔으니 좋은 맘으로 설악의 풍경을 누리고 돌아간다. 46일만 개방하는 것이 아니고 여유롭게 길이 열린다면 다시 찾고 싶은 멋진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