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다시 봄날이

정진숙 2018. 1. 5. 09:44

올해로 칠순을 맞는 문우 한분이 계신다. 재작년에 늦깎이로 등단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신 덕에 고희기념 수필집을 발간하게 되셨다. 삼년 째 한 교실에서 수필 강의를 듣고 있는 띠동갑인 이 분께 글쓰기를 오 육년 먼저 시작했다는 이유로 연배가 아래임에도 나는 선배 아닌 선배 대접을 받고 있다. 마침 사는 곳도 가까운 데라 더 자주 뵙는 사이기도 하다.

 

이 분은 늘 꿈이 있다고 하셨다. 출판기념회를 겸한 고희연을 멋지게 하고 싶다는 작은 바람. 말이 그렇지 짧은 시간동안 책 한권을 쓰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당신 스스로 필력이 부족한 듯 여겨져 위축되고 자신 없어 하시기가 일수였다. 그래도 원하는 바를 꼭 이루겠다는 마음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글이 한편 한편 완성될 때마다 이 분은 내게 원고를 들고 오셨다. 정샘이 교정을 봐줘야 안심이 된다고. 내가 시간이 안 날 땐 일터로 글을 가져 오셨고 가끔은 메일로 글을 보내기도 하셨다. 도움 드린 거라곤 약간의 조언과 용기와 격려를 드린 것 뿐이었다. 결국은 어제를 끝으로 이년 동안 책 한권 분량의 수필을 완성하는 쉽지 않은 일을 해내셨다.

 

문제는 수필집 제목을 정하는 일이었다. 글 목록에서 책 제목을 뽑자니 흡족한 게 없다고 하신다. 내가 보기에도 마흔 아홉 편의 글과 잘 어우러지는 적당한 제목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고심 끝에 문득 떠올라 추천해 드린 게 ‘다시 봄날이’다.

 

사실 이 분의 인생은 지금이 다시 맞은 봄날이다. 칠십이 되기 이전 몇 해를 빼곤 힘겨운 날의 연속이었다. 은행에서 근무하던 꽃청춘 시절에 미인대회에서 시를 대표하는 미인으로 선발되기도 하셨던 단아한 외모의 이 분을 보고 고된 삶을 상상하긴 힘들다. 그럼에도 남편과 일찍 헤어져 두 딸을 혼자 키우며 사셨던 세월을 떠올리면 어렴풋이 그려지는 그림들. 글 속엔 살아온 날의 조각들이 조금씩 녹아 있다. 부끄럽다며 망설이던 옛일들을 글로 풀어놓고 이젠 그 기억에서 맘 편히 벗어나셨다. 다행히 예쁜 두 따님은 좋은 직장에서 좋은 짝을 만나 자식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이제야 말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여행도 다니고 혼자만의 여유를 누리며 유유자적 사신다. 젊은 날 하고 싶었던 걸 지금 다하고 사시니 봄날이 왜 아닐까.

 

봄날은 청춘의 어느 한 시기만을 말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순간을 산다면 그때가 언제 건 그 순간이 봄날일 것이다. 가끔씩 함께 여행할 때면 이야기하곤 하신다. 정말 자기는 운이 좋은 거라고. 하고 싶은 것들을 같이 할 수 있는 이들을 만나서 감사하다고. 나도 감사하다. 누군가에게 도움 받았던 것처럼 누군가의 꿈을 위해 작게나마 도울 수 있었으니.

 

선생님, 칠순과 첫 수필집 발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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