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늘 가던 가족여행을 잠시 미뤘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생신이 보름 상관으로 나란히 있어
가까운 곳으로 겨울여행을 떠나곤 했었다.
올해로 어머니는 팔순이 되시고 아버지는 여든 하나가 되신다.
안타깝게도 어머니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아
조금 더 따뜻한 계절로 여행 가기를 미루었다.
철마다 모시고 다니며 세상구경 다닌 지도 꽤 여러 해 되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쉽지 않을 모양이다.
불현 듯 십년 전 아버지 칠순 때 일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풍류를 좋아하시는 편이라 고희연을 치르고 싶어 하셨다.
친구분들과 가족들을 모시고 조촐한 잔치를 준비했다.
사진도 찍고 흥겹게 노래도 부르고 덕담도 주고받으며
고희연은 분위기 좋게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께서 나를 붙들고 눈물을 보이신다.
맏이인 내게 제일 미안하다시며 말이다.
기분 좋은 날 무슨 말씀이시냐며 나는 당황했다.
늘 빚진 기분이셨단다.
한창 꿈 많던 나이에 집안 치다꺼리 하느라
하고 싶은 것 제대로 못하게 해서 가슴 아팠다고.
아주 틀린 말씀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게 언제 적 일이던가.
갓 스무 살에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했던 건 이미 이삼십 년 전의 일이다.
더구나 그 사이 내 힘으로 진학도 해서 상관없는 일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어느 결에 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도 그때가 앙금으로 남았었나 보다.
말로는 다 지난 일이니 괜찮다면서 가슴 한켠이 뻐근해져왔다.
식구들이 좋은 날에 왜 그러냐고 말리는 데
한참을 아버지랑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곤 지금은 나 하고 싶은 거 다하며 행복하게 사니까
절대 미안해하지 마시라 위로해드렸다.
그 이후로 십년이 더 지났다.
이젠 내가 도리어 부모님께 죄진 기분이 든다.
조금 더 건강하실 때
자주 시간 내서 함께했으면 좋았으련만.
어디든 함께가고 싶은 마음만 앞서고
지금은 두 분 다 선뜻 길을 나서기 힘들어하시니.
어버이 살아 신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 하랴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 뿐인가 하노라
애닯은 맘에 사모곡만 맥없이 불러본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이란 (0) | 2018.03.02 |
---|---|
비 내리는 고모령 (0) | 2018.02.12 |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0) | 2018.01.12 |
다시 봄날이 (0) | 2018.01.05 |
가깝고도 먼 섬, 대마도 2 (0) | 2017.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