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여행이란

정진숙 2018. 3. 2. 15:50

여행이 별스럽지 않은 일상처럼 된 것이 언제쯤이던가.

어딘 가로 떠난다는 건 그저 바라는 꿈에 불과했던 적도 있었다.

긴 망설임과 갈등이 늘 따라 붙었다.

시간과의 다툼 또는 경제적인 이유들이 발목을 잡곤 했다.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상상 속에만 머무를 때

여행은 까마득히 먼 꿈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작은 길 떠남도 여행은 여행이다.

무엇이든 시작해보자.

하나 둘씩 내가 가고 싶은 가까운 곳들을 찾았다.

거창한 기대감을 내려놓으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계획하고 떠나고, 다시 돌아오고.

그런 시간들이 늘어나며 소소한 만족감을 맛보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는 즐거움

시도하지 않았으면 맛보지 못했을 기쁨들이 차츰 늘었다.

 

그렇게 여행의 나날이 늘어가던 중

오래 전 고군산군도 선유도에 갈 기회가 있었다.

어수룩한 선창에서 배를 타고 섬에 잠깐 내려

한 바퀴 훌쩍 둘러보았던 선유도, 장자도, 신시도, 무녀도

고군산군도의 아름다운 바다 풍광보다

처음 보았던 군산의 옛 포구며 오랜 골목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이름으로만 알았던 작은 도시의 뒷골목이

내게 정체모를 강한 이미지를 각인시켰던 것 같다.

 

여행은 이런 낯선 것들과의 조우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익숙함을 발견하는 놀라움

너무나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알게 되는 경이감

서로 다른 것들의 혼재 속에서 또 다른 질서를 찾아내는 과정

그 모든 것들이 여행 안에 들어 있다.

그래서 언제나 가슴 설레고 두근거린다.

낯설고 때론 예측 불허한 만남들

이번엔 또 어떤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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