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결심 / 정연복 올 한 해도 삼백예순다섯 개의 소중한 선물이 나를 찾아올 것입니다. 스물 하고도 네 시간이 담긴 ‘오늘’이라는 보물 상자 매일 아침마다 머리맡에 반가이 놓여 있을 것입니다. 온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복된 선물이지만 오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 시 2018.01.02
송년회 / 목필균 후미진 골목 두 번 꺾어들면 허름한 돈암곱창집 지글대며 볶아지던 곱창에 넌 소주잔 기울이고 난 웃어주고 가끔 그렇게 안부를 묻던 우리 올해 기억 속에 너와 만남이 있었는지 말로는 잊지 않았다 하면서도 우린 잊고 있었나 보다 나라님도 어렵다는 살림살이 너무 힘겨워 잊었.. 시 2017.12.16
12월의 독백 / 오광수 도망치듯이 달아난 가을을 아쉬워 할 겨를도 없이 12월이 불쑥 내곁에 다가왔습니다. 바라던 소망들은 어찌 되었는지 숱한 미련들만 두런거릴 시간이 이제 또 찾아오겠지요.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또다시 꿈꾸게 됩니다. 내년에는 더 잘해볼 거라고 독백만 가득해지는 날에 시 .. 시 2017.12.01
달려라 도둑 / 이상국 달려라 도둑 / 이상국 도둑이 뛰어내렸다. 추석 전날 밤 앞집을 털려다가 퉁기자 높다란 담벼락에서 우리 차 지붕으로 뛰어내렸다. 집집이 불을 환하게 켜놓고 이웃들은 골목에 모였다. ―글쎄 서울 작은 집, 강릉 큰애네랑 거실에서 술 마시며 고스톱을 치는데 거길 어디라고 들어오냔 .. 시 2017.10.01
용대리에서 보낸 가을 / 이상국 용대리에서 보낸 가을 / 이상국 면에서 심은 코스모스 길로 젊은 여자들이 달리기를 한다 그들이 지나가면 그리운 냄새가 난다 마가목 붉은 열매들이 따라가보지만 올해도 세월은 그들을 넘어간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이 되고자 했으나 여름이 또 가고 나니까 민박집 간판처럼 허술하게 떠.. 시 2017.10.01
9월이 오면 / 안도현 9월이 오면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 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 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 시 2017.09.03
봄 / 이성부 <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 시 2017.03.10
모항으로 가는 길 / 안도현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있지? 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 따위 눈 딱 감고 떼어내고 말이야 비로소 여행이란, 인생의 쓴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까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번쯤 내동댕이쳐 보는 거야 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 시 2017.03.08
정주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 석 <정주성> 산(山)턱 원두막은 비었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 심지에 아주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려 조을던 무너진 성(城)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魂)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城門)이 한울빛.. 시 2017.03.08
여우난골족 / 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 시 2017.01.31